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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시절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수를 놓아 보낸 엽서가 라디오 신청곡 코너 에 선정되어 누나와 함께 환호성을 지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다 같은 노래인데, 그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트윈폴리오가 부른 ‘웨딩케익’은 다른 날 들을 때보다 더 구 슬프게 들렸다.
윤형주도 송창식도 김세환도 양희은도 알게 되었고, 야박한 용돈 을 아끼며 LP판을 사모으고 속도에 맞춰 틱틱 울리는 잡음과 함께 소리를 감상하 는 귀도 열려갔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들은 ‘나를 고향으로 데려다주오 시골 길이여 (Take me home country road)’라는 팝송은 웨스트버지니아가 마치 내 고향인 것 처럼 상상하게 만들었다. 남의 추억에 내 것을 담는 건 음악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누나들 옆에서 흘러가듯 들은 음악이 베토벤과 모차 르트라는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팝송에서 디스코, 클래식 과 재즈, 뉴 에이지와 OST를 넘나들며 취하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흔적도 남지 않는 음악에 푹 빠져 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귀담아듣지 않던 ‘아리랑’도 타국 출장길에선 애국심이 불끈 솟으며 가사를 되뇌고, 귀가 닳도록 들었던 팝송은 음악 시간에 시험을 치르며 부른 가곡보다 더 친근해지는 오묘함도 느꼈다. 어디 그뿐인가? 음조 도 제대로 모르는 트로트는 고향 선배들과 어울리면 으레 교가처럼 열창하면서 하 나가 되게 해주지 않았는가?
돈을 제대로 내고 음반을 샀을 때가 즐기는 데는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곡만 골라 듣거나 여러 음반을 한곳에 몰아놓고 들을 수 없는 한 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가만히 음 악을 감상하기보다는 부산하게 오디오를 계속 만지면서 즐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 따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세트테이프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 좋아하는 음악만 골라 녹음하고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기쁨 때문에 30분마다 테이프를 뒤집기 위해 녹음 기를 떠나지 못하던 불편함은 대학생 시절의 추억으로 남았다. 소리통까지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던 카세트테이프는 당시 최고의 혁신 기술이었다.
그 덕분에 음악이 나오는 스피커를 따라 몸을 움직여야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내가 움직이는 대로 음 악을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이동성이 확보된 셈이다. 물론 라디오 크기가 작아져 음악을 갖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신청곡을 원하는 대로 들을 수 없는 단점은 여전했다. 음악은 이렇듯 시절에 따라 높낮이와 박자를 만들고 추억이라는 소중한 기억 을 담으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
은빛세상
2014/06/06 08:22
2014/06/0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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