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작가 : 강은교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연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졸 1968년 9월 ≪사상계(思想界)≫로 등단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빈자 일기>, <소리집>, <붉은 강>,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노래>,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 <초록 거미의 사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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