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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6 02:51 2014/10/06 02:51
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2014/10/06 02:51 | 일상과 생활 이야기

죽음의 계곡 : 눈을 감고 길을 걷는 당신에게

유병률 저 | 알투스

“우리는 왜, 지금 이곳에,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가?”
불안과 절박함으로 가득한 이 죽음의 계곡을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윌래밋밸리의 전설에서 시작되는 경제사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는 이 책은 『서른살 경제학』의 저자가 우리가 허우적대는 이 상황의 시작을 '경제사'에서 찾고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Kalapuya)라는 원주민 부족이 살던 축복 받은 땅이 ‘죽음의 계곡(The Valley of Death)’이 된 비극적인 전설. 칼라푸야 부족은 비옥한 토양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그곳을 떠나지 못했고 ‘아무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 채 계곡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곳을 빼앗으려는 백인들의 총부리로 오랜 역사를 끝냈다.

성공의 봉우리에 올라서도 한숨 돌릴 수 없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의 사다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지만, 늘 제자리인 우리의 상황과 흡사하다. 무언가를 이룬 것 같아도 행복하지 않고, 돈과 일에 대한 편집증은 갈수록 심화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이데올로기가 되어, 아무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하지 않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현실. 어쩌다가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실마리를 결코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자 : 유병률

한국일보 경제부와 사회부기자로 16년, 현재는 머니투데이 기획취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강대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2030세대를 경제학에 눈뜨게 했고, 경제학서적의 트렌드를 이끈 《서른살 경제학》(2005년)과 문화경제학의 새로운 코드를 만든 스테디셀러《딜리셔스 샌드위치》(2008년)가 있다. 그밖에《여자경제학》(2006)과《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2》(2009, 공저)가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어쩌다가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 묵묵히 회초리를 견뎌야 하는 야만의 시대도 있었고, 양계장의 암탉처럼 비록 새끼를 깔 수는 없지만 주인이 부족하지 않게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비교적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타협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모두가 기회의 사다리를 붙잡기 위해 죽기살기로 덤벼야 하는 죽음의 계곡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어쩌다가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의 부모와 선배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를 모르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세상사’라고 하는 경제사회는 옛것이 관습처럼 유전되고, 거기에 새것이 뒤엉켜 진화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이 새로 더해졌는지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 묵묵히 회초리를 견뎌야 하는 야만의 시대도 있었고, 양계장의 암탉처럼 비록 새끼를 깔 수는 없지만 주인이 부족하지 않게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며 비교적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타협의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모두가 기회의 사다리를 붙잡기 위해 죽기살기로 덤벼야 하는 죽음의 계곡 한복판을 지나고 있습니다. --- 「야만: 오케이목장의 결투 같았던 미국 자본주의의 탄생」 중에서

혹시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를 읽어보셨는지요.(…) 주인공 암탉이 뛰쳐나오고 싶었던 곳은 알을 품겠다는 꿈만 잊어버리고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배부르고 안전하며, 적어도 ‘폐계’가 될 때까지는 미래가 보장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암탉은 양계장 철망을 뚫고 탈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역사에도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율성과 주체성에 대한 꿈만 잊고 산다면, 풍족하고 불안하지도 않으며 조용하고 평화롭고, 여유도 있었던 시절 말입니다. 역사가들은 이 시절을 ‘타협의 시대’라 부릅니다.(…)

이처럼 타협의 시대에는 큰 부자가 된 사람은 별로 없지만, 절대 다수의 미국인이 전보다 더 잘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혁신은 덜됐지만, 개개인의 삶의 스케줄은 대개 예측 가능했고, 지금과 같은 절박함이나 불안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성공에 이르는 비밀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고, 언제 뱀사다리를 밟고 미끄러져 내려올지 몰라 가슴을 졸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폴 크루그먼의 표현을 빌리면,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이웃들이 사는 모습은 마치 캐딜락(Cadillac)과 쉐비(Chevy, 쉐보레의 애칭)처럼 비슷했습니다. --- 「타협: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기고 얻은 보금자리」 중에서

양계장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면서 암탉들은 생존 자체를 일차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야생의 허허벌판으로 내몰립니다. ‘암탉으로서의 본질적 소망’과 ‘생존 자체에 대한 소망’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살던 내 마음속 울타리도 여지없이 허물어집니다. 본질적 소망과 생존 자체에 대한 소망이 철저히 분리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 삶과 내 생계가, 내 영혼과 내 몸이 철저히 둘로 나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1980년대 이후 노동자들은 극심한 임금하락과 고용불안에 직면합니다. 사회의 복지프로그램은 해체되고, 노조가 보호해주던 평생 직장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돌변합니다. --- 「해체: 가치와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얼굴의 자본주의」 중에서

모든 문제와 해답을 자기 안에서 찾도록 부추기는 ‘자기계발’이라는 개념은 야만의 실체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맙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가 강조하는 자기변혁은 ‘변혁’이라는 표현만 빌렸을 뿐, 나를 둘러싼 환경은 고정된 채로 두고 나의 습관을 바꿔 그 환경에 잘 적응하라는 것입니다. 정치화 사회는 쏙 빼고 처세만 남긴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상처를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할 기회를 박탈해버립니다. (…)

어느새 사람들은 ‘자기계발에 몰입하는’ 하이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동일시합니다. 원래의 자아인 양 내면화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질적 소망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깊이 소회되는 하이드형 인간. 이것이 죽음의 계곡에 갇혀버린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악마의 맷돌은 쉬지도 않습니다. 계속 돌아갑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하지 않으면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게 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의 삶은 찢기고 가루가 되고 튕겨나갑니다. 누군가는 맷돌을 멈춰야 합니다. 나의 소중한 삶이 우선이 될 수 있도록. --- 「은폐: 기회와 보상의 새로운 분포가 만들어낸 자기계발형 인간」 중에서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것뫀, 수평적 생태계의 싹을 품고 있는 우리 주위의 귀신고래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은 그 의미가 어렴풋하지만, 많은 희망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는 첫발은 우리가 그 변화의 조짐들로부터 탈출과 희망의 단서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흐름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 「탈출:수평적 생태계의 흐름에 따라가는 진정한 탈출」 중에서
 

“왜 모두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데스밸리Dath Valley에서 시작되는 경제이야기

이 책은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윌래밋밸리의 전설에서 시작되는 경제사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Kalapuya)라는 원주민 부족이 살던 축복 받은 땅이 ‘죽음의 계곡(The Valley of Death)’이 된 비극적인 전설이 불안과 절박함에 갇혀 있는 오늘날의 우리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칼라푸야 부족은 비옥한 토양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어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그곳을 떠나지 못했고 ‘아무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도 떠나지 못한’ 채 계곡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곳을 빼앗으려는 백인들의 총부리를 등지고서야 그들의 오랜 역사도 막을 내렸다.

이 죽음의 계곡은 끊임없이 기회와 풍요의 사다리를 추구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죽어가고 있지만 주위의 아무도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우리의 현실이다. 성공의 봉우리에 올라서도 한숨 돌릴 수 없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기회의 사다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극한까지 밀어붙이지만, 늘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우리가 바로 죽음의 계곡에 갇혀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가도 정작 자신도 그렇게 죽어나가는 게 두려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내면화하는 상황 말이다.

“경제사를 모르면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사를 아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어쩌다가 이 죽음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이곳을 벗어날 실마리를 결코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경제사를 꼽았다. 우리가 흔히 ‘세상사’라고 하는 경제사회는 옛것이 관습처럼 유전되고, 거기에 새것이 뒤엉켜 진화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이 새로 더해졌는지 해명해야 하고, 그것의 출발은 경제사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사회는 거대한 스토리의 연속이자 역동적인 진화과정이며, 사람들이 만들어온 우리들의 역사이다. 지배와 복종, 저항과 갈등의 권력관계에 따라 조건이 바뀌기도 하고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변화 과정을 이해해야만 지금 우리가 죽음의 계곡에 갇힌 이유와 탈출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진보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가 “경제학의 목적은 우리 운명을 결정하게 될 자본주의라는 무대를 우리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며, “경제학을 뚫고 들어가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경제사”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사를 모르면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구조는 그 구조에 걸맞은 인간형을 만듭니다”
여섯 가지 인간형으로 풀어본 경제이야기

이 책은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뒤바꿔놓았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미키 맥기(Micki McGee)가 “어떤 경제체제가 그에 걸맞은 문화적· 사회적· 인적 구성형태를 지닌다는 점은 사회학의 대전제다”라고 밝혔듯이 자본주의 역사는 매시기마다 새로운 인간형을 요구했다. 미국 자본주의가 탄생한 ‘야만의 시대’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표현을 빌리면 ‘낯 뜨거운 시대’였다.

4년간의 남북전쟁 기간을 전쟁특수로 활용해 세기의 부호가 된 J.P모건과 탐욕과 자선의 두 얼굴을 가진 록펠러 등이 독점의 화신이자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기록되었다. 반면 루이스 하인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 시대는 일곱 살 소년들이 통조림공장에서 고기를 썰다 자신의 손까지 썰어야 했고, 그들의 부모들은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 묵묵히 회초리를 견뎌야 하는 야만적 자본주의 시대였다.

이후,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 자본주의 역사는 ‘타협의 시대’로 접어든다. 큰 부자는 별로 없지만, 절대 다수의 미국인이 전보다 잘살게 되었다. 혁신은 덜됐지만, 개개인 삶의 스케줄은 대개 예측 가능했고, 지금과 같은 절박함이나 불안의 흔적도 없었다. 언제 뱀사다리를 밟고 미끄러져 내려올지 몰라 가슴을 졸일 필요도 없었다.

폴 크루그먼은 이 시대를 “모두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이웃들이 사는 모습은 마치 캐딜락(Cadillac)과 쉐비(Chevy, 쉐보레의 애칭)처럼 비슷했다”고 정의했다. 이 시대는 비록 새끼를 품을 수는 없지만 주인이 내주는 먹이를 먹으며 비교적 편안하게 알만 낳으면 폐계가 될 때가 보장되는, 평생의 시간을 팔아넘기고 얻은 보금자리에 안주하는 ‘양계장 암탉형 인간’을 탄생시켰다.

1980년대 이후 미국자본주의는 탈주를 소망하는 양계장의 철망을 주인들이 먼저 벗겨버린 형국이었다. 기업가와 정치인들은 대공황 이후 타협의 시대를 지탱해온 울타리를 해체했다. ‘5달러짜리 하루를 보장할 테니 규율을 따르라’는 지침은 ‘이젠 자유다. 단 모두에게 5달러를 보장할 순 없다’로 바뀌고, 평생의 시간을 팔긴 했지만 예측 가능하며 개인적 서사가 가능했던 삶은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이 경제사의 현실은 보금자리와 감옥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분열된 삶을 강요하며 가치와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게 한다. 이는 지금의 우리처럼 기회의 사다리를 붙잡기 위해 죽기살기로 경쟁하고 노후대비까지 해야 하는 악착같은 ‘자기계발형 인간’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정치가 울타리를 허물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해체의 시대는 기회와 보상의 전혀 새로운 분포가 나타나고, 로버트 라이시가 ‘부유한 노예’라고 언급했듯 자신의 본질적 소망과 생존 자체에 대한 소망을 분리시키는 이중적 인간을 만든다. 지킬과 하이드 박사처럼 말이다. 지킬은 하이드를 통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하이드에 탐닉하듯 사람들은 자기계발에 몰입하는 하이드를 원래의 자아인양 내면화한다.

자신이 악마의 맷돌 속에서 갈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경제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가 말한 악마의 맷돌은 ‘시장에 정치적·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인간의 노동과 자연과 돈을 모두 한순간에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시장경제의 속성이라고 경고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의 삶은 찢기고 가루고 되고 튕겨나간다.

시장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보상의 격차를 확대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에 올인하게 만든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성공의 확률은 더 떨어질텐데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승산에 대한 과대평가‘에 빠지고, 이는 끊임없이 자기계발하지 않으면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게 한다. 자신의 본질적인 소망이 무엇인지도 몰라 자신에게도 깊이 소외되는 하이드형 인간, 이것은 죽음의 계곡에 갇힌 오늘날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귀신고래로 상징되는 탈주의 희망을 꿈꾸며
수평적 생태계의 흐름에 따라가는 진정한 탈출

저자는 이 맷돌을 멈추게 하고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실마리를 한 마리 고래에서 엿본다. 옛날 우리나라 동해안에 살았던 귀신고래로, 이 고래는 작은 따개비들을 몸에 붙이고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 너른 바다를 유영한다. 공존공생해야 할 생태계를 독점한 사나운 범고래들과는 달리, 보살펴야 할 약한 존재를 업고 다니며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주는 귀신고래가 만든 따듯한 생태계가 바로 탈출의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IT바다에서 귀신고래를 찾을 수 있다. 과거 MS가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사람에게 보탬이 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창조적 논리가 오늘날의 IT바다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지고자’하는 욕망보다 ‘이루고자’하는 욕망을 실현하려 하고 생태계간 수평적 호환까지 포함한 오픈소스의 플랫폼, 즉 더 넓은 생태계를 만들고 제공하고 있다. 탈주의 희망은 또 다른 곳에도 있다.

일본 가가와현의 작은 섬 나오시마에 자연을 향해 활짝 열린 미술관을 지은 안도 다다오 같은 예술가도 귀신고래라 할 수 있다. 이 섬은 일본 정부가 계획하지 않아도 안도 다다오가 만든 공유개념의 미술관 하나가 플랫폼이 돼, 섬 주민 모두가 아티스트가 되고 일본의 대표이미지가 되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공생의 가치는 누군가의 완벽한 설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창조적 열정이 만들어내는 영역임을 설파하고 있다. 즉, 창조공생의 가치가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는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는 첫발은 우리가 이런 변화의 조짐들로부터 탈출과 희망의 단서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흐름에 합류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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