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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01:41 2014/10/24 01:41
주의 집에 거하라 - 김재한 목사 (성서침례교회-행당동)
2014/10/24 01:41 | 말씀과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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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 김재한 목사 (성서침례교회-행당동)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라
 
성경본문 : 시편 84편 1절-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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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4 01:37 2014/10/24 01:37
위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 이찬수 목사 (분당우리교회)
2014/10/24 01:37 | 말씀과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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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 이찬수 목사 (분당우리교회)
 
설교제목 :위로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성경본문 : 계 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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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05:11 2014/10/23 05:11
눈을 들어 바라보라 - 최영업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일산신광교회)
2014/10/23 05:11 | 말씀과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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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들어 바라보라 - 최영업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일산신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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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02:13 2014/10/23 02:13
좁은 마음을 깨트리고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2014/10/23 02:13 | 말씀과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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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좁은 마음을 깨트리고

본문 : 요한계시록 7 : 9~12

설교자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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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 04:26 2014/06/11 04:26
십일조에 대하여
2014/06/11 04:26 | 말씀과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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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관련된 모든 질문에 대해 진리의 말씀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할 때, 단순한 지적인 질문에 대해서 지적인 답변을 갖는 것 이상의 참된 복음의 진리와 원리를 깨닫도록 인도해 줍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한 성령님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다운 진리는 삶의 전반적 영역에까지 자유를 주는 전인적인 능력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런 면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질문이든지 마음에 품고 있지말고, 던지고, 성경적인 답변을 얻는 것은 더 성숙한 신앙생활로 나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자, 구체적인 내용을 함께 나눠보도록 합시다. 

십일조 뿐만 아니라, 신앙의 전 영역을 “율법과 복음”의 큰 틀에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적 규정이 많이 있습니다.  제사, 안식일, 정결법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 중에서 십일조도 하나의 구약의 율법적 규정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이해한 올바른 성도는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님의 복음(Good News)에 의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십일조를 율법적 규정으로 생각하게 되면 “반드시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의 의무 조항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신앙인은 삶의 모든 관점을 율법적 관점이 아니라, 복음적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음적 관점이라 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값을 다 치루어 주셨고,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을 누리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종은 의무를 다해야만 징계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징계와 관계없는 자들입니다.  올바른 자녀는 징계가 두려워서 일하지 않습니다.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부모를 섬길 따름이지요.  이것이 복음적 관계가 있는 자가 행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설사 징계를 받더라도 연단, 성숙을 위한 훈련의 과정이지, 완전히 넘어 뜨리기 위해서 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제사 제도를 폐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했듯이, 예수님은 단번에 거룩하고 온전한 제물이 되심으로 더 이상 제물이 필요 없도록 하셨습니다(히 7:27).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는 엄청난 양의 짐승들이 제물로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서 더 이상 그러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자유와 해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혹은 ‘복을 받기 위해’ 제물을 드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고 은혜를 약속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박하와 운향과 근채’의 십일조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셨습니다.  즉,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충실하면서, 의롭고 자비로운 삶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신 것입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는 올바른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가 더 근본적인 십일조를 드리는 자세입니다.  십분의 일만이 아니라 십분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그리스도인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십분의 십을 다 드려야 한다’가 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은혜의 관점에서 구체적인 십일조 규례를 신약적으로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수익의 십분의 십이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자, 은혜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한 성도가 갖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용액이 얼마인가를 기본적으로 산출해야 합니다.

지역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낭비해서도, 너무 풍성하게 갖고 있어도 안됩니다.  삶의 전 영역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유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사업 혹은 연구를 위한 투자, 자녀 양육, 노후에 대한 대책 등과 같은 삶의 책임을 요하는 영역은 기본적인 사용액에 첨가 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항상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금액을 먼저 정해 놓고, 나머지는 그 금액의 양에 관계없이 다 구제와 헌금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내 삶의 십분의 일이 하나님 것이고, 나머지 십분의 구는 내 것이다라는 개념에서,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것이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사용하는데 필요한 것을 후원받는 다는 개념이 진정으로 은혜와 신앙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자세입니다.  

이런 개념이 될 때 ‘세금 공제 후의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냐, 공제 이전의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냐?’의 질문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질문은 십일조의 부담을 줄여 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소유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므로, 참다운 십일조 정신을 퇴색시키는 자세입니다. 

인본주의가 팽배하고, 경쟁, 물질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의 시대에 이러한 전적 하나님 소유의 개념을 갖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이 전적 하나님 소유의 개념을 은혜와 감사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에 참다운 신앙인의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십분의 일이라는 숫자적 개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십분의 일을 제정해 주신데는 하나님의 지혜와 원리가 있다고 봅니다.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중, 레위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가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십일조는 레위 지파와 구제를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레위 지파가 갖게 되는 분량은 구제 부분을 제외했을 때 일반 지파의 평균 수입보다 조금 낮게 책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성막 사역과 제사 사역 등 영적인 사역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십분의 일이라는 구체적인 숫자의 의미가 사역과 구제를 위해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헌금드릴 때 기준을 ‘최소한’ 십분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편 교회(universal church)가 십일조 헌금을 올바르게 사역자를 위해서 사용하고(개 교회의 사역자 뿐만 아니라 지방과 시골의 작은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을 위해서도 사용), 그리고 구제를 위해서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가난한 자도 ‘최소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헌신과 은혜의 감사를 표식할 수 있으며, 또한 삶의 ‘최소’ 생계를 후원받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로 건설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분명히 십일조 이상을 드렸고, 그 정신을 예수님은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는 이러한 과부를 향하여 올바른 구제를 행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최소한’십일조가 하나님께 드려질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십일조와 관련해서 자주 인용하는 말라기서의 기본 의미입니다.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구절을 축복받기 위한 도구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언약백성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언약 관계 안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이 언약 관계 안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인한 구원이 있으며, 그 구원은 영원히 보호,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측면에서는 그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적 자세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의 표식으로 십분의 일을 드리고,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축복으로 보여 주시겠다는 결의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십일조의 근본적인 정신은 물질의 영역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시간, 봉사, 관계의 영역등 삶의 전 영역에서 신앙인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떼어 드린다는 개념을 갖기 보다는, 나의 24시간 전체, 생각의 전체, 삶의 전체를 헌신의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시간의 십일조, 능력의 십일조, 봉사의 십일조 등을 구체적인 교회 사역과 관련해서 드려야 합니다. 

한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이러한 질문이 나온 근저에는 오늘날 교회들이 헌금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반적 인식의 탓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거룩한 헌금을 하나님의 원리대로, 올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은혜의 원리에 맞게, 그리고 투명하게 헌금을 바르게 사용할 때 십일조 정신을 통한 하나님 나라 선포는 더욱 이 시대에도 능력있게 발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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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 04:02 2014/06/11 04:02
구약의 각종 제사와 그 의미에 대해서
2014/06/11 04:02 | 말씀과 찬양

제사는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신약의 예배와 연결되므로, 성도의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그래서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의 예배 의식의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가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과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신약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의 성도들이 예배의 올바른 의미를 배우고, 올바른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종류에 따른 분류’(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죄)와 ‘방법에 따른 분류’(화제, 거제, 요제, 전제) 등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나 하나의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1) 번제(레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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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헌신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은 생활 형편에 따라서 흠없는 수고, 수염소, 수양 등으로 드릴 수 있고, 또한 집비둘기 새끼나 심지어는 산비둘기를 잡아서 드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생활 형편이 어떠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번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가 있고, 또 특별한 경우에 드리는 특별 번제가 있습니다.  매일 매일 구원의 감격속에서 그리스도의 헌신에 감사하고, 또한 가장 유일한 구원의 길에 헌신하겠다는 영적 제사를 오늘날에도 드려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새벽기도회는 아침 번제라 할 수 있으며, 저녁의 가정예배는 저녁 번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상번제는 아침에 밤새도록 켜 있었던 등잔불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 끄기 전에 드리는 제사이고, 저녁에는 다시 밤새도록 불을 밝히기 전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빛과 관련한 번제를 생각할 때 밤낮 없이 빛을 밝히는 것의 연결고리가 번제임을 생각한다면, 번제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교회와 성도가 가질 때 진정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2) 소제(레2장)

소제는 하나님께 충성과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삶을 성별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충성의 표식 제사입니다.  제물은 피없는 곡물을 곱게 가루로 만들어서 기름, 유향, 소금 등과 함께 드리거나, 번철 또는 화덕에 기름을 넣어 구운 무교병, 무교 전병으로 드리기도 했고, 첫 이삭을 볶아 찧어서 드리기도 했습니다. 

3) 화목제(레3장)

화목제는 하나님과 경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제사 또한 생활 형편에 따라 흠 없는 수소, 암소, 수양, 암양, 염소 등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함으로 하나님과 성도간에 화평이 이루어 짐을 의미합니다(롬 5:1).  성도가 세상 속에서 이웃 상호간에 연결자가 되고, 화평자가 되는 삶이 바로 화목제의 의미입니다. 

4) 속죄제와 속건죄(레 4-5장)

번제, 소제, 화목제는 다 자원제이나, 속죄제, 속건죄는 의무제입니다.  따라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속죄제와 속건죄는 대체적으로 이렇게 구분됩니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대해 범한 죄를 속함받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이고, 속건죄는 인간이나 성물에 대해 범한 죄를 속함받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두 제사 모두 십계명의 1-4계명(대신관계)에 관련한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이며, 이 경우에 사람들과 연관되어서 재물에 손상을 가했다면 사람과의 화해를 위해서 침해한 물건의 1/5에 해당하는 벌과금을 내는 것이 속건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속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대인관계에 관한 십계명인 5-10계명을 범했을 경우 드리는 제사입니다.  또한 속건제는 속죄제와는 달리 언제나 개인적인 성격을 띤 제사라는 점에서 속죄제와 구별됩니다.

그러나 두 제사 공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만큼, 그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애매 모호한 경우가 많이 후대에 와서는 결국 속죄제와 속건제가 거의 구별없이 동시에 드려졌습니다.

십자가가 대신관계, 대인관계를 의미하는 수직, 수평의 두 나무가 만나서 이루어 지듯이, 신앙인의 삶에서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진정한 구원,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 인격의 무죄성을 의미하며(고후 5:21), 그리스도의 순수한 충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신앙인들도 그리스도를 따라서 순수한 충성을 다해야 함을 의미합니다(빌 2:17).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두가지로 답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온전하게 깨닫지 못한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한계있는 사랑(구원하지 못하고, 영원하지 못한)일 따름입니다.  신앙인은 속죄제, 속건제를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온전하게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따름으로 삶을 통한 속죄제, 속건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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